재난 상황에서 인간은? <드라이>
# 인간성이 말라버린 재난 앞에서
어느 날 캘리포니아 남부에 물 공급이 끊긴다. 방금까지 콸콸 나오던 물은 가뭄으로 인해 뚝 끊겨버린다. 사람들은 급히 마트로 가서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비축해둔 물로 연명해간다. 허나 멀쩡한 사람들도 물에 눈이 돌아간 '워터 좀비'가 되는 데까지는 사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바닷물을 정화하는 기계는 해초가 걸려 고장 나고 산업도 상업도 일시에 마비가 된다.
재난 상황 속에서 사람이 인간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전세계가 마비된 요즘과 비교해도 남 일 같지는 않은 이야기였다. 살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사람들이 편하게 꺼내 보이는 나약한 이기심은 세상을 혐오와 불신으로 만들어 간다. 전염성 바이러스로 인해 서로가 거리 두기를 하고 접촉하거나 만나지 않는 방식으로 상호 신뢰가 적어지는 코로나 국면보다 <드라이> 속 세상은 팍팍하다. 격리, 사회적 매장으로 분리되는 코로나와는 다르게 '물'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기에 사람들은 지상에 있는 물을 두고 싸운다. 때론 폭력으로 때론 폭동으로 더 나아가 살인까지 일삼게 된다.
오늘의 한 줄들
부엌 수도꼭지에서 기묘한 소리가 난다(p11)
침묵은 언제나 그 자리에 도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p28)
"흠, 그쪽 단수는 꽤 오래전에 시작했나 보네."(p164)
# 드러나는 나약함과 극복하는 연대
얼리사와 개릿의 부모님은 물을 구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다. 남매는 물을 찾아 옆집에 사는 켈턴과 물을 찾아 나서고 우연히 합류하게 된 재키와 함께 모험을 한다. 네 명의 청소년 연대는 강하지도 끈끈하지도 않다. 미국식(?)으로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함께 움직이는 그들은 힘을 모아 연대하여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여정에서 만난 어떤 이들은 얼리사의 무리처럼 힘을 모아 움직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남의 것을 빼앗아 연명하기도 한다. 물 부족이 빚어낸 참상은 비단 소설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독자들도 '만약에 내가 저 상황에 처했다면'이라고 가정한다면 자신이 떳떳하게 생존할 수 있을는지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며 인간이 나약함을 드러낼 때 나는 어떤 식으로 인간성을 지켜낼 수 있을는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물론 막상 재난의 한가운데 갇혀 있다면 이런 한가로운 소리를 하기 어려울 테지만 말이다.
<드라이>는 비단 재난 상황에서 인간의 대응에 대해서만 논하지 않는다. UN에서 세계 물의 날을 지정한 것처럼 물은 우리에게 소중하기에 잘 관리하고 오염을 줄여야 한다. 소설 속 설정은 주변 지역의 이기심으로 물 공급이 도시간에 중단되며 발생된 인간이 만든 재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지속된 가뭄'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목이 텁텁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한 발씩 나아가는 본격 재난 생존소설 <드라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세계 대전 Z: 영화 <월드 워 Z>의 원작. 재난도 이런 재난이 있을까.
- 그것은 나만이 아니기를: 구병모의 단편 소설집. 수록작 중 <파르마코스>에 가뭄과 저주에 관한 이야기 체크.
- 회색 인간: 소설가 김동식의 짧은 세상들. 재난 상황과 불평등에 대한 감각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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