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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기록/어른 책 읽기

문신에 새기는 소중한 마음,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by $시카고 머씬건$ 2020.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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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에 새기는 소중한 마음,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 구병모 / 아르테 / #소설

# 새기는 마음

언젠가 지울 생각으로 문신을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레터링, 문장 혹은 문양은 반영구적으로 몸에 남는다. 여전히 어떤 사람들에게는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타투'는 점차 자기표현/의미를 담는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사람들이 몸에 새기는 작은 마음들의 이야기이자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의 일면을 보인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직장동료 화인의 추천을 받아 시미는 타투이스트를 찾아간다. 며칠 전 회사에서 화인의 목에 있는 붉은 샐러맨더 문신을 보고 그는 묘한 느낌을 받았고 끌리듯 찾아간 것이다. 타투이스트는 시미의 예상과 다르게 단정한(?) 정장을 입고 그를 맞이하고, 도안을 추천하거나 하는 호객 없이 외려 정신과 의사처럼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이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내면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공간, 손님의 인생을 들으며 오직 그에게 맞는 맞춤형 타투를 새기려는 과정은 비단 서비스의 일환일지어도 요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런 곳이 있다면 가보고 싶었다.


오늘의 한 줄들

 

남들 몸에 새긴 거 별로 안 중요합니다. 자기 몸에 얹을 거니까요.(p46)

 

축복의 말은 입 밖으로 나온다고 하여 그것을 말한 사람의 내면에서 총량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실제의 축복이 달아나거나 가치가 감소 하지도 않으니까.(p116)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p138)

 


# 세상의 만연한 폭력 속에서 '도망'과 '맞섬'

이야기는 그저 상담 클리닉처럼 흘러가지는 않는다. 다소 결이 달라보이는 '원인 불명의 미제 살인 사건들'과 얽히고설키며 전개된다. 구병모라는 작가가 그리는 세계는 언제나 명징하면서도 환상적이다. 사망자들의 사인만 밝히자면 불타고, 짐승에게 물리고, 익사하는 기묘한 상황이 일상에서 펼쳐진다. 시미와 화인의 사연이 이 사건들과 어떻게 엮일는지는 직접 책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비단 살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의 주요 화자인 시미와 화인은 세상에 만연한 폭력 속에 놓여있다. 직장 내의 희롱부터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잣대들, 개별의 가정사/연애사에 이르기까지 소설이 시작하는 시점부터 아니 그전부터 마지막 페이지 이후까지도 위험은 어디나 도사린다.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하고 때론 서로 힘을 실어주며 이 세상을 견뎌나가는 느슨한 연대를 형성한다. 

 

구병모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두 가지 키워드를 의식하게 된다. 바로 '도망'과 '맞섬'이다. 상반되는 두 단어의 병치가 그의 소설에서는 납득이 된다. 화자들의 일상은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망가져있다. 다만 도망칠 유토피아도 없을 뿐더러, 간다고 한들 나아질 것 없는 상황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현실에 유예시킨다. 그저 견디고, 견디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보다는 오늘을 버티는 셈이다. 그러나 버티는 힘과 마음을 유지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허나 화자들은 맞선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세상이 주는 희로애락(대개는 좋지 않은 것들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한 맞서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사람들과 연대하기도 하고, 진화하기도 하고 때로는 파멸하기도 한다. 

 

현실과 맞닿은, 그렇지만 낯선 구병모 작가의 세계는 이번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에서도 빛난다. 장편이 부담되는, 단편은 아쉬운 사람들에게 이 책은 구병모 입문작으로도 좋을 것 같다. 읽기를 권한다.

 


*함께 보면 좋은 책들

 

012

*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작품 세계의 출발점. 10년이 지나도 세련된 그의 서사를 느껴보자.

* <빨간구두당>: 동화, 설화를 변주한 이야기 모음집. '나쁜 동화' 섹터의 구병모는 탁월하다.

* <방주로 오세요>: 구병모의 숨겨진 명작. 읽다가 정신 차리니 새벽 3시였다.(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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