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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기록/어른 책 읽기

마케터 현실 직시 모먼트, <이 광고는 망했어요>

by $시카고 머씬건$ 2020.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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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 현실 직시 모먼트, <이 광고는 망했어요>

# 마케터 스타트 모먼트

대학을 나오는 시점에서야 늦되게 알게 되었다. 먼저 간 선배들이 '상경계열 복수전공'하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국문과를 전공하는 4년간 문학의 세계를 유영하며 영혼의 성장은 이룩할 수 있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먹고살 고민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졸업 유예(수료)를 결정하며 깨달았다. 문과 오브 찐 문과였던 내가 취직을 할 수 있는 사기업의 직무는 '인사, 총무, 영업, 마케팅' 정도였다. 경영/경제 파트는 지원조차 불가했고, 통번역은 토익조차 경기를 일으키는 내가 갈 곳이 아니었고, 기술직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남은 선택지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했다. 나는 내성적이니까 영업은 어려울 거야 ㅠㅠ, 인사/총무 부서는 사람들이랑 많이 부딪치는 일이겠지? ㅠㅠ 하면서 이리저리 소거하다 '마케팅'이라는 직무를 처음 만나게 되었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여기저기 원서를 썼더랬다. 아마 취업 스터디 한 번 해보지 않은 과거의 나와 같은 찐 문과 친구들이 마주할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천운이 따라서 준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취직이 되었는데 그 직무 이름은 '전자책 담당자'. 나는 담당자라는 직업 뒤에 많은 일이 도사리고 있을지 전혀 알지 못했다.

 

마케팅 겸 영업 겸 홍보 겸 제작 겸... 하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업무여서 짧은 시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다행히도 좋은 사수와 멋진 동료들을 만나 잘 정착할 수 있었다. 그 시간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또 잃었다. 가장 크게 변화한 점이 있다면 바로 상품에 대한 감각이 아닐까 싶다.

 

'마케팅'은 간단히 말하면 상품을 잘 '팔기' 위해 필요하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이 좋다 나쁘다 평하고 권하는 위치가 아니라, 어떤 책이 내 앞에 떨어져도 가치를 잘 포장해서 판매를 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고 그 과정에서 내가 가졌던 막연한 환상들을 지워나가야만 했다. 좋은 책은 알아서 잘 팔리지 않았고 출판사는 이익을 내야 하는 회사였고 나는 고용된 직원일 뿐이었다. 매 순간 잘 팔기 위해서 분투하고 셀링 포인트를 잡고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닿게 하는 일. 그 과정은 고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법이 제한하는 한계 안에서 유통사와 서비스 제공자는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일을 배우면서 (물론 원 저작자와 번역가와 책의 계약을 준수하는 선에서) 과거의 내가 '마케팅이 책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막연히 후려치던 일을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 책 또한 상품이었고, 고객의 눈에 띄지 않은 숨은 명저들은 한번 잠기면 유명인사가 꺼내 들기 전까지는 묻히는 모습을 보며 많이 반성했더랬다. 서론이 길었다. 아니, 다시 생각하니 서론이 전부다. <이 광고는 망했어요>를 읽는 내내 나는 계속 되물었다. 내 생각이 맞을까?

 


#오늘의 한 줄들

 

도태된 브랜드들의 말로 - 가만히 현상 유지만 한 브랜드에게 명복을 주소서(P89)

 

내가 유튜브 스타인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주택 담보 대출 광고를 하라고요? 나 이제 열두 살인데, // 그냥 밀레니얼스러운 거 아무거나 해 보세요.(P147)

 

그래서 수프를 더 많이 팔 수 있는 마케팅 계획이라는게 '3D 프린팅 VR 웨어러블 드론을 라이브 스트리밍'하자는 겁니까?(P156)


#틀을 깨되 틀을 잊지 말고, 공격적이지만 안전한 마케팅

<이 광고는 망했어요>는 마케투니스트 톰 피시번의 '본격 마케터 현실 카툰'이다. 20여 년간 마케팅 업계에 종사하며 직접 겪은 마케팅 경영 사례들을 위트가 섞인 카툰으로 표현해냈다. 책에는 2002년부터 2017년까지 15년 간 그린 만화가 실렸고 덕분에 브랜드 광고부터 SNS 마케팅, 유튜브, 스냅챗, 브랜디드 콘텐츠, VR, 콘텐츠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연대기 순으로(?) 마케팅의 진화도 살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한 대목은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요구하지만 보수적인 의사결정에 부딪히는' 장면들이었다. 빛나는 아이디어도 피드백을 받으면서 특장점이 없는 평이한 것이 되고, 간단한 트위터 공지도 컨펌 지옥에 걸려 법적으로 문제될 것 없는 노잼 콘텐츠로 전락하는 모습들이 그랬다. 비단 위트와 풍자를 위해 과장해서 쓴 것도 있겠지만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하는 결정권자가 있을 때 벌어지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디어가 의사결정을 거치면서 잘리는 것은 아니다. 혁신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고 인용한 문장처럼 '가만히 현상 유지만 한 브랜드'는 도태되어 시장에서 밀리기 때문에 분투해야 한다.

 

그런 한편 새로운 매체들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시대 흐름에 맞춰 신문 광고/방문 판매를 거쳐 TV광고, SNS 바이럴 광고, 빅데이터 광고, 챗봇 광고에 이르기까지 잘 따라가야 한다. 그러다보면 생기는 부조화. 유튜브 잘 되니까 우리도 유튜브 해! 라거나 아무 노래 챌린지 뜨니까 우리도 챌린지 만들어! 같은 무리수들을 경계해가며 시장과 고객에 맞춰가야 한다. 변화의 속도에 늦된 편이고 변화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나의 보수적인 성향은 한 가지 질문에 맴돌게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제대로 하는 게 맞나?

 

#스스로의 결정을 믿으며 나아가는 일

이게 맞나? 이렇게 해도 되나? 라는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다만 직장 선배들의 모습에서 조금씩 실마리를 찾는 요즘이다. 아직 판단 기준이 잘 서지 않는 나와 달리 선배들은 쳐낼 일과 공들여야 할 일, 구현 가능한 괜찮은 아이디어와 무리수를 구분하는 선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명확한 기준은 없다. 다만 그들은 경험이라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움직이되 레퍼런스를 참고하면서 지금 마케팅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집중했다. 그리고 빠르게 결정을 했다면 그 선택을 믿고 밀고 나가더라.

 

<이 광고는 망했어요>는 비단 재미를 위해 '망한 모습'에 집중하지만, 만화 속의 마케터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결정을 믿고 추진하고 있었다. 그 선택이 있기까지는 아마도 컷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사례조사와 과거 데이터들과 타사 동향까지 녹아있을 게다. 아마 고민은 계속되겠지만, 믿음을 갖고 경험을 채워나가야 겠다고 다짐하며 리뷰를 마친다. 마케터들 화이팅!

 


# 함께 보면 좋은 책들

 

012

 

* <초격차>: 방법 이전에 있고, 결과 너머에 있는 마인드 셋의 중요성

* <결단>: 직원도 오너도 빠른 결단이 필요하니까

* <마케터의 일>: 직업인으로서의 마케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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