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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기록/어른 책 읽기

호시노 겐, <생명의 차창에서>: 만능 엔터테이너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읽는다

by $시카고 머씬건$ 2020.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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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겐, <생명의 차창에서>

- 만능 엔터테이너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읽는다

생명의 차창에서 / 호시노 겐 / 민음사 / #유명인에세이

#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의 그 남주!

책을 읽기 전 호시노 겐에 대한 정보는 한국에서도 한창 유행했던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逃げるは恥だが役に立つ)>의 주연이자 엔딩 댄스곡 (코이)의 원곡 가수라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편견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고 글이 잘 읽혀서(번역이 좋은 것 같다.) 앉은자리에서 후루룩 마지막 장까지 닿을 수 있었다.

 

글에 묻어 있는 겸손함과 따뜻함이 느껴져 '호시노 겐'이 무얼 하는 사람인가 검색을 해보았고, 그가 음악가이자 배우이자 작가이자 DJ로 다양한 분야에서 방송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연예인이며 그것도 일본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스타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조금 놀랐다. 많은 것을 누린다기에는 소박한 맛이 있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건강 문제로 보이는) 힘든 일이 있었음에도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평범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톱스타는 일반인과 다를 존재라고 생각한 건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생명의 차창에서>는 호시노 겐이 일본 잡지 《다 빈치》2014 12월호부터 2017년 2월호에까지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구성했다고 한다. 흔히 생각하는 유명인 에세이의 짜치는 느낌을 생각하고 꺼려진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경험과 성찰을 베이스로 하는 이야기를 탄탄한 필력으로 풀어낸다.


# 오늘의 한 줄들

 

(...) 거기에 퍼커션 멤버로 들어오지 않을래, 라고 제안해 왔다.

  그때까지 음악은 집에서 몰래 하는 일일 뿐이었다. 카세트테이프에 남들 모르게 노래를 녹음했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사람들 앞에 나섰다가 비판을 받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기도 뭐해서 "그래, 할래."라고 대답했다. 그날부터 내 음악 인생이 시작되었다. (p132)

 

그러한 상상이나 예감이 맞든 틀리든 현실을 변화시키고 미래를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 상상력과 나르시시즘은 다르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없던 말인데, 누가 '눈치 없다'라고 타박을 하고 '중2병'이라고 무시를 해도, 그런 시시한 말에 지지 말고 자꾸만 망상을 해야 한다. 현실을 창조하는 근원은 대부분 상상력이니까. (p239)

 

십 대부터 이십 대에 걸쳐 늘 '외톨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슬픔에 빠져서 나를 둘러싼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잔뜩 꼬여 있었다. 현실을 외면하고 몹쓸 이상만을 내세우며 행복을 느끼지 못하도록 자신을 몰아붙였다.

"행복해지면 좋은 표현(창작)을 할 수 없어." 하면서 인간성과 재능에 자신 없는 나를 정당화하고자 변명으로 점철된 한심한 이론을 내세웠다. 싫어할 필요가 없는데도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는데도 좋아한다고 말하며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고 애썼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꾸미지 않고는 못 배겼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깎아내리고 "알고 있다고요."라며 상처받지 않게 미리 연막을 쳤다. 한심하다. 저런 태도로 살면 실제로 그보다 행복한 인생이 없더라도 평생 행복을 느끼지 못할 텐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행복하면서도 더 갈구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짜다. (후략) (p244)

 


# 기회를 끌어들이는 상상력과 현실 직시, 그리고 긍정적인 마음들

책을 읽는 내내 놀란 것은 그의 방송인으로서의 삶보다는 삶을 대하는 자세들이었다. 그는 일상의 흔적들을 수집한다. 식사 하러간 식당의 분위기, 손님들의 모습부터 택시 기사와의 대화, 호텔 창 밖으로 보이는 야경, 동료들과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잘 듣고 이를 자신의 언어로 바꿔 스스로 성찰하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본받을 점, 고민하는 지점들, 과거의 자신에 대한 회상/반성에 이르기까지 차분한 어조로 진솔하게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진솔함만 잔뜩 묻어있었다면 읽는 사람이 지칠 수도 있겠지만, 호시노 겐의 글은 유머러스 하다. 노래를 만들 때 도입부의 편안함, 사비의 임팩트, 마무리의 차분함과 같은 강약 조절이 탁월하다. 때문에 긴 문단도 쉽게 읽히고 독자도 공감할 수 있는 모먼트를 선사한다. 이러한 문체도 결국 그의 태도가 글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용한 세 파트는 내가 생각하기에 그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그가 앞으로도 자신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부분들이었다. 먼저, 그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친구의 제안에 응한 것이 그의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혼자서 기회가 오면 잡을 수 있도록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을 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고, 우연한 기회에 친구가 내민 손을 잡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더 넓은 세계로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두번째로, 그는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되고 싶은 것, 그리고 싶은 상을 꾸준히 그려갔다. <부의 추월차선>과 <시작의 기술> 류의 자기계발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우선 내가 되고 싶은 것을 상상하는 일. 나는 절대 못해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는 일로부터 미래는 달라진다고 말이다. 이 또한 그가 그 책들을 읽고 실천했기보다 살다 보니 그렇다더라 느낀 점이겠지만 끝까지 갔고, 상상을 멈추지 않고 더 먼 곳까지 닿는 일을 여전히 실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현실에서의 자기 자신의 위치를 직시하는 것이다. 메타인지라고도 하는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는 능력은 과대평가 혹은 과소평가한 자신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끈다. 부족하다면 더 많은 노력으로 실력을 키우고, 저평가 되었다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키우거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등 다양한 시도로 자신을 넓혀갈 수 있다. 당장은 냉혹하고 괴롭겠지만 현실 직시는 장기적으로는 나를 괴롭히던 정체감과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다. 그는 겸손하지만 메타 인지가 뛰어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갔다.

 

따뜻한 에세이집이 자기계발서 스타일의 분석으로 변질되었다고 느끼셨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유명인의 에세이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삶의 태도'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삶을 대하는 말씨와 문체와 행동들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 갈 수 있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호시노 겐에게서 배운 태도는 경제적인 성공을 담보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나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에 가까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읽으며 그의 팬이 되었다. 이후 그의 책이 더 번역되어 나온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살 것 같다. 슬럼프에 빠졌거나 삶이 부정적으로 느껴질 때 혹은 인생철학의 재점검이 필요한 시기에 이 책은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한 부분으로서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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