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고칼로리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스트레스로 비대해진 모든 이를 위한 책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직장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비대해진 모든 이를 위한 책이다. 한 명의 비만인으로서 이 책을 보는 내내 낄낄거리며 무릎을 치고 격하게 공감하며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어느새 책이 끝나 있는 묘한 경험을 했다. 좋았던 부분이 굉장히 많았지만 뚱뚱한 사람이 갖는 자격지심과 그를 둘러싼 불편한 낙인들에 대해 솔직하게 또 예민하게 다뤄냈다는 점에서 고맙기도 한 에세이집이었다. (특히 레귤러 핏이 스키니 핏이 되는 웃픈 현실과 청바지의 가랑이가 헤지는 아는 사람만 아는 슬픔을 말하는 대목이 압권이었다.)
# 오늘의 한 줄들
정상체중이라는 게 존재하고 날씬한게 미의 디폴트인 사회에서 살이 쪘다는 것은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약자에게 유달리 가혹하고도 엄격한 한국 사회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비만인은 직간접적으로 매일 정상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폭력적인 시선에 노출된 처지인 것이다. // 그래도 비만한 '남성인 나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살찐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멸시와 비하는 상상을 초월한다.(p41)
다만 나는 매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작가가 되었고, 내 책을 가지게 되었고, 내 글을 실을 지면을 얻게 되었으나, 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거나 나의 일상을 가꾸는 방법, 내가 나를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믿음을 완벽하게 잃어버렸다.(p100)
나는 앞을 보며 달릴 줄만 알았고, 그 속도와 거리가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고 굳게 믿어왔다. 마치 신화나 종교처럼.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아주 사소한 일을 처리하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을 살고 있었고, 한 치 앞의 미래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목표나 꿈은커녕 얼른 침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 바빴다.(p250)
(그 외에도 줄 친 부분은 엄청 많지만 남은 부분은 직접 보기를 바라면서 3개만 뽑았다.)
# 작가 박상영의 행보
책에는 수많은 인터뷰에서 신화까지는 아니고 민담 정도로 많이 구전되는 '새벽 5시에 출근전 시간 활용 작업, 퇴근 후 3시간 작업'에 대한 비밀도 책에는 드러난다. 꿈을 위한 폭주기관차, 엄청난 작업 속도와 열정. 담보하는 퀄리티와 작가 자체의 매력까지 '박상영 작가'의 등장은 내게는 큰 의미였더랬다. 첫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대도시의 사랑법>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내심 그가 소진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의 작품은 좋았지만 그의 표현대로 전국 방방곡곡의 행사를 뛰는 출판계의 송가인 같은 행보는 과한 이미지 소비로 인한 현타와 번아웃을 야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그는 마지막 회사를 퇴사하는 시점부터 프리랜서 전업 작가로의 삶으로 옮겨오는 과정을 내밀하게 말해준다. 특히 작가가 되었고, 내 이름으로 책도 냈고, 지면도 얻었지만 나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잃어간다는 대목을 보면서 그에게 주어진 스포트라이트의 무게,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과 불면의 시간들이 조금이나마 전해졌다.
그가 앞으로도 자신의 캐릭터를 뿜뿜 쏟아내는 재밌는 작품들을 계속해서 내어주면 좋겠다. 앞으로도 그의 소설도 에세이도 조금은 천천히 나오더라도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 함께 보면 좋은 작품들
연관성 있는 작품을 가져왔으면 좋으련만 '비만인 에세이'는 특수한 터라,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가 특보 시리즈를 가져왔다.
* <뭐라고? 마감하느라 안들렸어>: 도대체 작가의 어딘가 통달한 듯한 태도와 낙관, 그리고 책임감을 느끼고 싶다면.
*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 꾸준함의 대명사 곽재식 작가의 멀리가는 방법.
* <그리고 먹고살려고요>: 글과 그림으로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한 백두리 작가의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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