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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기록/어린이 책 읽기

한때 잘했던 것에 머물지 않기를, 원코의 미학 <슈퍼 토끼>

by $시카고 머씬건$ 2020.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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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잘했던 것에 머물지 않기를, 원코의 미학 <슈퍼 토끼>

슈퍼 토끼 / 유설화 / 책읽는곰 / #회복탄력성


한때 잘했던 것에 머물지 않기를


자의든 타의든 좋아하는 일에서 멀어지는 순간이 있다. 재능의 한계를 느껴서, 일이 바빠서, 크게 실패해서... 저마다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그렇게 한 번 멀어진 그 일로 다시 돌아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슈퍼 토끼>는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 이후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토끼가 게으름을 피우며 나무 아래서 낮잠을 사는 사이에 거북이는 꾸준히 걸어 결승점에 먼저 통과했고, 제 속도로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이 어쩌면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마따나 이야기는 거북이의 위대함을 칭송할 뿐, 남겨진 패배자 토끼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딱 그 지점. 온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패배자가 된 토끼의 심정을 이 책을 담아낸다.

토끼는 다시 시합하자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신경증적으로 달리기의 달자만 들려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시 시합해서 이긴다한들 토끼가 얻는 것은 없으며, 자신의 전부였던 달리기가 이제 자신을 증명할 수 없게되었기 때문이다. 토끼는 앞으로 달리기를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칩거생활에 들어간다.

다시 한 번, 원코의 미학


사실 토끼가 달리기를 잘한다지만 매번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대가 느림의 대명사인 거북이였다는 것이 달리기 인생에 큰 영향을 주긴했어도 그것은 그저 한번의 실수였을 뿐 돌이킬 수 없는 실패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끼가 칩거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은 작품에서는 동네사람들이, 우리네 인생에서는 세상이 패배에 대한 면역력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코라는 단어가 있다. 게임을 하는 중에 승기가 기운 상황, 상대에게 한 번의 기회를 달라(오락기에 코인을 넣듯이)는 의미이다. 기회를 주든, 주지않든 상대의 결정이지만 서로 승리를 쟁취하기위해 경쟁하는 게임에서 이런 단어가 나온다는 것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어쩌면 구걸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기회를 달라는 작은 요청(?)은 단판으로 끝나지 않는 긴 인생의 여정에서는 꼭 필요한 요소다. 요즘 20대는 패기가 없다거나 용기가 없다는 말을 하는 꼰대들의 배경에는 그들의 경험이 녹아있다. 호황과 성장기에 사회에 자리잡은 사람들에게는 낭만도 젊은 날의 실수도 많았을 것이다. 요즘 애들과 차이가 있다면 바로 사회적 안전망의 유무라고 생각한다.

무한한 경쟁속에서 자라왔지만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좁은 문은 더 작아지고, 코로나가 터지며 더 쪼그라드는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건 원코다. 그것이 우연한 계기가 되든 차근히 준비한 결과든 실패로 미끄러져도 다시 일어날 기회와 힘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슈퍼 토끼>의 토끼는 우연한 계기로 다시 달리게 된다. 그리고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뛰어나간다. 다시는 달리지 않겠다는, 앞으로 달릴 수 없다는 마음을 녹이고 좋아하던 일을 되찾은 그에게 원코가 주어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한 번의 기회를 잡고, 다시 기회를 만들어가며 다음으로 또 다음으로 삶을 연장해 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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