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는 기록/어른 책 읽기

거장의 모든 기록들,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by $시카고 머씬건$ 2020. 9. 16.
반응형

거장의 모든 기록들,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 박완서 / 작가정신


* 완독한 도서만 기록합니다. 왜 끝까지 읽었는지. 무엇이 내게 남았는지 정리합니다.

* 3Why 1What 기록: 왜 읽었는지 4번을 스스로에게 묻고, 무엇을 1가지 남겼는지 씁니다.

 

Why 1. 나와 박완서 선생님의 기억

故박완서 선생님의 책과 작은 추억이 있다. 대학 입학식날 학교측에는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선물하라는 의미로 희망 도서를 받았더랬다. 엄마는 네가 볼 것이니 네가 골라서 내라고 말씀하시고 가게로 출근하셨고, 나는 고민 끝에 박완서 선생님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골랐다. 내가 신입생이던 그해 1월 선생님은 돌아가셨기에 내가 고른 그 책은 생전의 마지막 책이었다. 그때는 내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지 한치 앞도 안 보였기에,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우연한 계기로 2학년에 전공을 국문과로 선택하고 지금은 책을 만들고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선생님이 피난 갔다가 들러서 게를 잡아먹던 파주에 머물며 있는 것을 보면 9년전 내가 골랐던 그 책과의 인연이 이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박완서 선생님은 나와 같이 그의 작품과의 작은 인연들을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엮여 있는 작가다. 대중 작가, 국민 작가, 세태 작가, 거장 등 그를 수식하는 수많은 단어들처럼 누구보다 독자와 닿아있고 누구보다 세상과 닿아있는 작가였다. 그렇기에 이 책은 누군가의 인생에 한 번은 스쳐갔을 박완서 선생님과의 만남의 순간들이다.

 

프롤로그 에필로그라는 직관적인 이름처럼 박완서라는 이름을 달고 출간된 모든 책에 실린 서문과 발문, 수상소감을 한 권에 담은 책이다. 솔직하면서도 따뜻하고, 겸손하면서도 위트있는 선생님의 말투가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Why 2. 작가의 말

 

돌이켜보면 내가 뒤늦게 스물세 살이 되어서야 소설책에 재미를 붙인건 작가의 말 때문이었다.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많던 그때의 나는, 언젠가 나도 지면을 얻어서 멋진 작품을 쓰고 그 뒤에 솔직한 작가의 말을 써서 사람들에게 내보여야지 마음먹었더랬다. 지금은 꿈과 약간의 거리가 생겼지만(다시 노력해서 따라잡아야겠지) 여전히 나는 소설책을 사면 작가의 말을 먼저 훑어본다. 

 

작업 노트처럼 이 작품은 어떠어떠한 계기로 썼다. 이름은 누구한테서 따왔고, 어떤 게 모티프다 하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작가가 있는 반면, 나는 작가의 말이 제일 힘들다며 푸념을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냉정하게 감사의 말만 딱 잘라 쓰고 끝내기도 한다. 내가 박완서 선생님의 작가의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머쓱해하면서 내가 뭐라고~ 하면서 운을 띄우는 소박하면서도 솔직한 한 줄 한 줄이 너무 좋고, 거의 대부분의 서문/발문 말미에는 출판사와 임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점이다. 

 

이러한 작가의 말만 연달아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니 어찌 좋아하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여러 책에 실린 저마다의 이야기들은 연결점은 없지만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대별로, 나이대별로 달라지는 박완서라는 작가의 마음과 모습의 변화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책 한 권을 마쳤을 때는 함께 30년을 달려온 기분이 든다.

 

Why 3. 촘촘한 아카이브의 흔적들

 

한 작가가 낸 책의 초판본부터 수차례의 개정판, 전집판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인생을 촘촘하게 엮었다.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읽는 희열은 한 사람 혹은 한 주제를 시간대나 주제별로 묶어서 흐름을 알 수 있는 것인데, 이 책의 경우는 시간대별로 도서를 배치하고, 초판과 개정판을 나란히 배치해서 시간의 변화와 다시 책을 내며 작가의 소회가 어떻게 변화는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수십년의 기록을 쌓는다면 책이 한 없이 두꺼워질텐데 TMI는 덜어내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만 방점을 찍어 깔끔하게 덜어냈다.

 

이와 더불어 2장, 3장의 배치도 인상적이다. 2장의 연표는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기 좋을만큼의 적당한 개인사와 도서 출간을 중심으로 선별적인 정보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제목과 주제에 충실한 구성을 느낄 수 있다. 3장의 시대별 표지 모음역시 박물관에 온 것처럼 스르륵 수십년의 작가인생을 훑어갈 수 있었다.

 

What 1. 기록의 힘은 위대하다. 정리의 힘은 위대함을 배가시킨다.

기록의 힘은 위대하다. 나는 조악한 블로그도 한 달 이상 꾸준히 가져가기 어려운데, 30년 이상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확장해 가는 일은 대단한 일이다.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우리 일상에 있을 법한 삶과 밀착한 이야기들, 작가의 경험인 듯 하지만 냉철하게 거리두기를 하고 이야기를 단단하게 직조해가는 박완서 선생님의 세계는 세상을 떠나신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견고하게 남아있다. 수십개의 출판사와 지면으로 흩어진 이야기들을 한 곳에 모아 정리하니 그 가치를 더 강화시킨다.

 

나의 보잘 것 없는 것 같은 작은 블로그 글들도 비단 내가 성공하지 않더라도 흔적이 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나이를 통과하는 지금을 기억하는 기록이 될 게다. 지금의 나의 생각을 부단히 기록하고 언젠가 선별된 글로만 한 권을 묶을 수 있을 때까지 쓰는 연습을, 적는 연습을 부끄러움을 극복하며 이어가야겠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