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을 쓰기 두려운 사람들을 위해, <열 문장 쓰는 법>
# 말은 잘하면서 글은 못쓰는 당신에게
말은 청중을 집중시키며 잘하는 사람도 백지 앞에 서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과거에 유행하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왕왕 보았던 표현. '말하듯이 노래하라.'와 글쓰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말투가 있듯이 글도 본인이 편안함을 느끼는 방식으로 쓰면 된다. 하지만 말이 쉽지 막상 쓰려하면 무얼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만 반복된다.
<열 문장 쓰는 법>은 첫 문장을 쓰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이런 길도 있어!'라고 알려주는 워크북이다. 책에서는 다른 글쓰기 책들이 말하는, 이를테면 '매일 써라.', '문장을 짧게 써라.' 같은 뻔하지만 필요한 이야기보다는 저자 김정선이 예문을 보이고 그것을 가듬어가는 과정을 단계별로 보여주며 독자도 함께 따라 할 수 있게 안내한다.
아래는 책을 읽다가 멈칫했던 통찰의 모먼트를 주는 부분을 적어두었다.
오늘의 한 줄들
1. (접속부사는) 다만 여러분이 그 일을 여러분의 입장에서 설명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말하자면 편집점 같은 것일 뿐이죠.(p.62)
2. 말하자면 말의 시간을 글의 시간으로 바꾸는 작업인 셈이죠.(p83)
3. 글을 줄여 쓰거나 늘여 쓸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건 외려 시간입니다. 반으로 줄여 쓴다는 건 원래 글을 읽는데 필요한 시간보다 절반으로 준 시간에 글을 다 읽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고, 두 배로 늘여 쓴다는 건 마찬가지로 두 배의 시간 동안 읽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라는 거죠.(p89-90)
#1 접속부사는 편집점
룰루랄라 스튜디오의 '워크맨'의 편집점은 얼마나 될까? 한번 보면 10분이 후루룩 날아가는 속도감있는 편집기술이 궁금해 나는 몇 초마다 영상이 바뀌는지 체크해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3초 이상 같은 화면에 머물지 않았다. 초단위의 컷 변환과 한 영상에도 수십 차례 바뀌는 맥락의 속도는 시청자가 이탈할 틈을 주지 않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책의 저자 김정선은 글을 쓰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한 문장으로 쓰기'라는 미션을 내려준다. 자기 소개를 문장을 끊지 않고 한 문장으로 쓰는 것으로 시작하여 몇 단계에 걸쳐서 글을 다듬는 법을 알려준다. 1번 문장은 가급적 '그런데, 그래서, 그리고'같은 접속부사를 덜 쓰자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정제된 글을 위해 꼭 필요한 조언이었지만 나는 조금 다른 포인트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런데, 그래서, 그리고'를 남발하는 글은 읽기도 어려울뿐더러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허나 영상매체가 익숙한 세대들에게는 역으로 쉬어갈 수 있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삽입해서 편집점을 제공한다면 글을 읽는 데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절된 맥락을 활용하는 놀이인 '밈(meme)'에 익숙한 사람들은 서장부터 종장까지 이어지는 긴 호흡의 글에 쉽게 피로를 느낀다. 글의 퀄리티는 저하될 수 있으나 암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흐름의 표지판으로서, 이를테면 그리고는 다음 문장에도 앞 문장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그러나는 다음 문장에는 반대의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그래서는 앞 문장이 원인이고, 뒤는 결과겠구나. 하는 식으로 작용한다면, 그 표지판이 밭게 배치되어 있다면 쉽게 따라가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상황은 다르지만 유튜브 시대의 글은 조금 달라져야하지 않나 하는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2, 3 말의 시간, 글의 시간
<열 문장 쓰는 법>에서 가장 인상적인 개념을 뽑는다면 단연 '시간'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포인트였기에 더 당혹스러웠고, 내가 왜 여태 이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멍함(?)을 선사해주었다. 글은 누군가에게 읽힐 때 의미가 생긴다. 글을 읽는 사람은 '시간을 할애하여' 타인이 제공하는 생각이나 정보를 받아들인다.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은 읽을 사람이 소요할 시간을 염두하고 써야 한다.
빠르게 툭툭 치고 나가는 긴장 있는 문장들을 연달아 배치한다면 독자들의 읽는 속도는 빨라지고 긴장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런 긴박감을 주는 것들만 연달아 배치한다면 읽는 이가 달리다가 지칠 수가 있다. 시간을 투여하여 천천히, 자세하게 살펴야 할 부분에는 분량을 길게 하여 머무는 시간을 조정하고, 짧고 강한 임팩트를 주는 공간에는 독자가 생각할 여지를 주는 공백을 만들어 빠르게 읽되 멈출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간 써온 글들은 나의 시간을 태워 만든다는 생각만 했을 뿐 독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았다. 글쓰기와 독자의 시간이라는 키워드는 큰 인사이트가 되어 앞으로의 글쓰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 반복하기_워크북
저자는 매일 쓰기는 작가 지망생들이나 실력을 높이는 사람들에게만 권하고, 생활 글쓰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문장을 넣어주었지만 그래도 결국은 반복이다. 이 책은 한 번 후루룩 읽기보다는 알려준 요령들을 직접 실천하면서 내 글을 내 손으로 다듬는 과정을 연습할 때 책값을 뽑을 수 있다(?). 어느 학원이나 마찬가지듯 선생이 아무리 잘 가르친다한들 학생이 '저 선생 강의 잘하네~' 하며 팔짱만 끼고 있다면 큰 효과를 얻지 못한다.
<열 문장 쓰는 법>이라는 책을 집은 사람이라면 최소한 '나의 문장'을 쓰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문장에는 지름길이 없다. 다만 쓰다보면 늘고 반복해서 고치다 보면 남들이 보기에도 괜찮은, 내 글을 세상에 내보이며 타인들의 시간을 앗아도 괜찮을 수준으로 점차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의 서두에 썼던 '워크북'이라는 말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매일은 어렵더라도 의식적으로 시간을 투입해야 괜찮은 문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한 줄 코멘트
- <리뷰 쓰는 법>: 리뷰는 정보 전달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 인사이트를 전하는 것.
- <서평 쓰는 법>: 내 이야기가 어렵다면 서평부터 시작하자.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저자의 전작도 함께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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