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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을 부르는 일
이름보다는 직함이나 소속을 말하는 일이 많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00학교, 00학과, 00회사 00팀 직급 같은 것으로 규정되고, 그것이 '나'를 설명하는 가장 편한 방법이 되었다.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는 귀찮아서 듣는 이도 나도 서로 피곤하지 않게 목적에 맞는 필요한 이야기만 하는 대화법에 너무 익숙해진 것일까. 나다운 게 뭔데! 하며 고민하던 사춘기와 취준생 시절과는 다른 결로 혼란이 찾아왔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되고싶은 것은 무엇이며 하고싶은 일은 무엇인지. 점차 잃어가는 기분이다.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고 다만 퇴근 후에는 나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침대에 짜그러지는 일상. 잠자리에 들 때는 오늘도 아무 것도 한게 없다고 좌절하는 매일의 반복. 나를 잃어간다는 마음을 많이 한다.
<이름을 알고 싶어>는 이런 시기에 나를 찾아왔고 나같은 사람을 타깃으로 쓴 건 아니겠지만, 내게는 큰 힘을 주었더랬다. 이 그림책의 화자는 이름을 알고 싶어 한다. 하늘의, 별들의 바위와 동ㆍ식물의 이름에 대해 바람과 바다와 육지의 이름에 대해 반복해서 알고싶다고 한다.
나는 따뜻한 이름을 불러주고 싶은 화자의 태도가 참 좋았다. 이름을 알고 부르고 싶은 마음은 타자가 누군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를 평가하는 학력, 직업, 직위, 재력은 내려놓고 그 자체를 보는 것이다.
2. 나의 이름을 불러본지 오래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다른 이들의 이름을, 그러니까 이해관계 속의 타인 말고 그들을 그들 자체로 바라본 지 오래된 것 같다.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나를 사회속의 구성원으로 생각했을뿐 나를 나로 바라본 지는 꽤 된 것 같다.
나다운 것이 뭔데 하는 질문을 늦되게 다시 되뇌는 이유, 퇴근 후 나지 않는 효율에 괴로워 하는 이유는 아마도 사회 구성원으로 일하는 나의 이름과 집에서의 이름이 어긋났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완전히 일치되긴 어렵겠지만 이 간극을 줄여간다면 나의 이름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름을 알고 싶어>는 적은 글과 서정적인 그림으로 마음을 풀어준다. 혹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면 읽으면서 마음을 되짚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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