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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기록/어린이 책 읽기

기억의 색깔들,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

by $시카고 머씬건$ 2020.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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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색깔들,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 / 미하우 스키빈스키 글, 알라 반크로프트 그림 / 사계절 / #일기to그림

 

1. 어떤 이의 방학 숙제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는 1930년생 미하우 스키빈스키씨가 1939년 바르샤바 초등학교 1학년, 다음 학년으로 진급을 위해 방학 숙제로 썼던 한 줄 짜리 일기장을 1997년생 화가 알라 반크로프트의 그림과 함께 복원한 그림책이다.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본 일, 기차역에 간 일, 하늘의 비행기를 본 일, 가족을 배웅한 일부터 그가 사는 지역에 폭격이 일어난 일까지 또박또박 큰 글씨로 쓰인 어린이의 한 줄 일기에는 신변잡기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80년 전의 기록은 보존되어 2020년대까지 전달되었고, 어쩌면 잊었을 그때 그 시절의 기억과 감상은 밀레니얼 세대 화가의 손을 타고 상상이 덧붙여져 새로 태어났다. 어쩌면 개학을 앞두고 날씨까지 몰아쓰던 우리네 초록색 일기장도 이 책에서의 작업처럼 후세의 사람과 연결될지도 모르겠다.

2. 기억의 색깔들

기억은 기록을 통해 보전된다. 사진이나 동영상은 순간을 박제하여 당시 상황을 재생하지만 그때의 감정이나 느꼈던 기분을 백퍼센트 복구시키지는 못한다. 비단 한 줄의, 어린이의 적은 어휘로 남겨진 기록이라도 일기는 감각을 복원하는 힘을 갖는다.

마치 할머니의 마들렌처럼 나의 기록을 통해 과거의 순간으로 접속하는 길이 된다. 시간이 흐르며 팩트와는 멀어지고 왜곡되어 정말로 있었던 일이 아닐지어도 괜찮다. 긍정의 기억이든 부정의 기억이든 우리는 시간을 거쳐왔기에 지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한 지점을 확인하는 작업은 나라는 인물이 그때의 나로부터 얼마나 떨어져왔는가 확인하는 척도가 될 수 있고, 그때의 내가 바라던 모습에 얼마나 가까워져 있을까 판단해볼 수도 있다.

억에는 색깔이 있다. 세피아 빛 아련함일수도, 초록빛 싱그러움일 수도, 때론 흙빛의 암울함일 수도 있다. 지나간 순간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통해 나의 기록에 접속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보는 일을 경험할 수 있다. 그들의 삶의 흔적들에서 나와 다른 시대와 환경의 모습을 보며 나 아닌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을 상상시키고, 타인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그림과 80년전 폴란드 어린이의 일기의 조화로 만들어진 이 책은 보는 재미와 더불어 타인에 대한 이해와 자아성찰 더 나아가 유대감까지 느끼게 하는 편안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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