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는 기록/어른 책 읽기

전장의 파일럿들, <수리 부엉이>

by $시카고 머씬건$ 2020. 6. 16.
반응형

전장의 파일럿들, <수리 부엉이>

수리 부엉이 / 얀 & 로맹 위고 / 길찾기 / #파일럿

 

전장의 파일럿들

 

<수리 부엉이>는 히틀러와 스탈린이 독일과 소련을 통치하던 시기, 독소전쟁의 동부전선을 배경으로 한 파일럿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역사적 배경이나 전쟁에 대한 정보는 잘 모르기에 고증이 어떨는지는 잘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멋진 작화와 비행기의 세밀한 묘사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그래픽노블이었다.

독일군의 불프와 소련의 릴리야는 저마다의 국가에서 에이스 비행사로 활약한다. 수많은 적군을 격추시키고, 때론 포로로 붙잡히거나 추락해 죽을 고비를 넘기는 그들의 삶은 전쟁사에 빗대어 보면 전형적이지만, 개인사적으로는 다이내믹하다. 적군이지만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는 관계, 더 나아가 애정의 관계로 발전하는 이야기는 나이브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전장이 주는 긴장감과 특수성은 그런 서사도 생동감있게 만들어 주었다.

도덕성과 전체주의와 인간

 

집단ㆍ국가에 소속되었다 하여 그 안의 모든 개인이 집단과 국가가 추구하는 정신을 지향하는 건 아니다. <수리 부엉이>의 초반부에는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독일군 불프의 개인적인 고뇌를 그린다. 영국군의 폭격으로 아내를 잃은 그에겐 어린 딸 로미뿐이다. 전장에서 잠시 나와 딸을 보러간 날, 로미는 '아빠는 전쟁에서 여자들을 죽이느냐고' 울면서 묻는다. 쉽게 답하지 못하던 불프는 로미와 앞으로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현장으로 복귀한다.

이 약속이 소련의 릴리야와의 연결고리가 된다. 불프는 포로로 잡힌 그녀를 강간하려는 부하들을 물리치고 대놓고(?) 풀어준다. 딸과의 약속을 표면적 이유로 드러내지만 '인간성'에 대해 역설하는 대목이다. '소련군'이기에 마음대로 죽이거나 범해도 된다는 논리는 인간성에서 벗어난 상황이다. 비단 하늘에서는 수십대의 적비행기를 떨어뜨리는 살인귀(?)지만 불프는 지켜야할 일말의 도덕성을 지키려 한다. 여기에는 전체주의의 선전이나 메시지가 정치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개인의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다.

릴리야는 그에 반해 당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캐릭터다. 당의 명령에 따라 거의 자살특공대에 가까운 밤의 마녀들 시절부터 최선을 다해 적을 섬멸한다. 이 대목을 보며 정치적인 것이 개인을 앞설 때 사람은 어떤 목적으로 살아가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읽는 내내 본인은 신념으로 움직이지만 개인의 존재는 지워지고, 소모품처럼 필요한 곳에 배치된 물건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인간의 도덕성을 생각하던 불프도 딸을 잃고 폭주해 자유사냥이라는 워딩의 무차별학살을 하고, 릴리야도 당의 명을 따르지 않는 선택을 하며 입체적으로 움직이기에 이야기는 뻔하지 않게 흘러 긴장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인간은 무엇일지. 전쟁은 무엇일지 새삼 생각하게 하는 책 <수리 부엉이> 빠른 속도감 덕에 완독까지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다. 볼만했던 그래픽 노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