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내가 배수아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올리는 키워드는 '샤머니즘'이다. 읭? 할 수도 있겠지만 딱 그 느낌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문장에 신이 들린 것 같다, 영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싶은 강한 힘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그는 '4차원'의 영역을 뛰어넘은 강한 이미지와 임팩트를 담은 글을 쓰기에 데뷔의 순간도 특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는 단 한차례도 문학을 공부한 적이 없다. 그에게 최초의 소설은 키보드의 형태로 다가왔다. 컴퓨터 워드 연습 도중 같이 컴퓨터를 배우던 학원의 다른 아이들은 노래 가사나 책을 보고 그것을 컴퓨터로 옮겼으나 자신은 머릿속에 떠오른 픽션을 그대로 타이핑하기로 했다. 그렇게 쓰여진 작품이 데뷔작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많은 이들은 배수아가 ‘천재 혹은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그에 따른 오해가 괴롭기는 했지만 사실인 이상 달리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1993년 서울역 철도문고에서 ‘소설과사상’ 잡지를 발견하다. 일반 독자의 투고를 받는다는 기사를 읽고 ‘사촌’의 원고를 보내다. 문학계간지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다. 그해 겨울, ‘소설과사상’에 ‘사촌’이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이란 제목으로 실리다.
그의 데뷔 과정은 신비롭다. 문학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았고 워드 연습을 하다가 문득 머리 속에 떠오른 이야기를 써내려갔고 그게 데뷔작인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의 초고인 '사촌'이 된다. 그리고 이듬해 병무청 공무원이 되고, 그다음 해 서울역에서 우연히 발견한 '소설과사상' 잡지에 독자투고를 통해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데뷔 이후의 행보도 놀랍다. 직장을 다니는 동시에 6년간 10권의 책을 쏟아낸다. 그는 엄청난 작업량의 허슬러였다.
약간은 신화적인(?) 데뷔 스토리가 그의 작품을 더 신비롭게 하는 것 같다. 그는 문단권력의 우위나 출신 성분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쓸 수 있는, 그릴 수 있는 세계를 글로 풀어냈을 뿐이다. 어쩌면 그가 전업작가로 시작하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문학을 할 생각이 없었기에 더 당당하게 글을 써내지 않았을까? 대중의 취향에 맞출 생각도 책을 써서 큰 돈을 벌지도 않았기에 '배수아' 장르로 30년 가까이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의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소설가가 되는 법을 정리해보자.
소설가가 되는 법
1. 일단 끝까지 쓰기: 워드 연습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이야기를 써서 완성한 것.
: 이를 배수아 작가는 천재니까 번뜩 떠오른 게 아니냐!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첫 글을 완성했기에 투고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떠올리기는 쉽지만 글로 표현했을 때 좋기는 쉽지 않다. (그의 천재로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2. 자신을 고수하기: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기
: 말하자면 공채가 아니라 특채 출신인 그는 문단 안에서 영향력을 펼치기보다는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데 집중한 것 같다. 독자 투고로 시작한 그의 작가의 삶은 돈과 대중의 사랑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다만 문단의 이해관계나 독자의 취향에 타협하지 않고 매니아를 만들며 바운더리를 넓혀가는 행보가 인상적이었다.
3. 계속해서 쓰기 + 업그레이드: 공무원 생활을 하며 6년간 10권을 책을 쓰는 허슬 + 업그레이드를 위한 노력
: 주변의 평이나 대중성(판매 부수)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쓰고자 하는 바를 묵묵히 이뤄나간 점 그리고 더 논리적인 글을 쓰기 위해 10권의 책을 내고도 꾸준히 공부하는 점.
[경향신문] 전업작가로 변신한 소설가 배수아(2003.05.19. 한은정 기자)
‘주인공들은 전혀 사회에 관심도 없고, 혼자 잘 놀고, 어쩌면 아무 생각 없는, 도대체 왜 사는지 모르는, 사실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절대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오히려 저런 사람은 이 사회의 변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회색분자들이지, 하고 욕을 할 그런 인물들이다. 배수아의 글은,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무표정하고 무책임하고 충동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탈적이라거나 실패자들이라거나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그런 것들도 어쨌거나 이 사회, 부르주아의 도시, 검은 무리의 늑대들이 어슬렁거리는 이런 도시를 깔끔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일 수도 있지 않을까’(whoiswho.hihome.com)
이 네티즌의 글은 소설가 배수아(38)에 대한 어떤 비평보다 정확하다. 배수아는 최근의 우리 문학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93년 등단해 올해로 작가생활 10년을 맞은 그는 소수 마니아 독자(본인에게 생각해보라고 하자 ‘100명서 1,000명쯤?’이라고 했다)를 가졌으며 몇몇 평론가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를 꼽을 때도 빠지지 않는다(그는 믿기지 않지만 신경숙과 비슷한 시기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 흔한 문학상 한번 받은 적이 없고 매호 문예지에 실리는 방식의 ‘배수아 특집’도 찾아볼 수 없다. 문단에서는 워낙 호·불호가 분명해 거론되기에 적합한 대상이 되지 못했다. 단 작품과 작가의 특이한 스타일 때문에 저널리즘의 관심은 남달라서 작품을 낼 때마다 적지 않은 조명을 받았다. 물론 이것이 판매부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배수아를 말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그의 등단 동기와 과정이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는 단 한차례도 문학을 공부한 적이 없다. 그에게 최초의 소설은 키보드의 형태로 다가왔다. 컴퓨터 워드 연습 도중 같이 컴퓨터를 배우던 학원의 다른 아이들은 노래가사나 책을 보고 그것을 컴퓨터로 옮겼으나 자신은 머릿속에 떠오른 픽션을 그대로 타이핑하기로 했다. 그렇게 쓰여진 작품이 데뷔작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많은 이들은 배수아가 ‘천재 혹은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그에 따른 오해가 괴롭기는 했지만 사실인 이상 달리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병무청 직원으로 짧지 않은 시간(92~2002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했다. 이것이 그의 작가생활을 많은 부분 규정했다. 우선 그는 문학제도에 기댈 필요가 없었다. 책을 써서 돈을 벌지 않았고 문단을 자기와 다른 세계로 여겼다. 대중의 취향을 믿지 않기 때문에 독자의 수도 상관이 없었다. 습작기를 거치지 않은 소설은 탈고과정 없이 쓰여졌다. 이렇게 나온 작가적 직관이 소수 독자와 평론가들을 열광시킨 것이다. 평론가 박철화씨는 “그 친구가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다른 여성작가들이 보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특이한 이면을 직관적으로 포착해 낯선 세계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거칠고 어색한 비문(非文)은 성토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이반의 매력으로 숭배되기도 했다.
작품속 주인공 이름이 대개 가명 혹은 익명인 것과 마찬가지로 배수아는 90년대 쓴 자신의 작품을 ‘네 권의 소설집과 네 권의 장편, 한 권의 중편, 한 권의 에세이’라고 부른다. 단 98년에 쓴 중편 ‘철수’는 예외적이다. 그때 비로소 제목을 고치자는 출판사의 제의를 거절할 수 있었다. 이전에 거절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무래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수’에 이르러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짧고도 적합한 제목이 ‘철수’였기 때문에 그 제목을 주장했다. 돌이켜보면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작가가 됐다고 생각하고 퇴고조차 하지 않았던 자신의 지난 소설들을 둘러보니 부끄러웠다고 한다. 자신의 직업이 ‘작가’라고 말하기 시작한 건 세기가 바뀐 이후다. 그는 병무청에 휴직계를 내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1년간 머물렀다. 하루 12시간 근무하고 다음날 쉬면서 소설쓰기를 9년간 끈기있게 계속했던 그는 현재의 삶을 떠나고 싶었고, 그래서 지구본을 여러차례 돌려본 끝에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싫어했던 바를 분명하게 깨달았고, 지난해 돌아온 뒤 직장에 사표를 냈다. 가장 큰 이유는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위치를 숨길 수 없는 장소에 있어야 하는 폭력.
그가 참을 수 없는 것은 폭력이다. 작가가 된 지 얼마 있다가 어떤 기회에(이 대목에서 그는 잠깐 우울했으며 그 내용은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엄격하고 진지하게 생각했을 때 자신이 얼마나 많은 폭력 속에 있고 그것을 체화했는지를 깨달았다. ‘나이 들고 양복 입은 남자들이 일식집에서 생선회를 먹는 장면’으로 떠오르는 우리 사회의 폭력, 그로 인한 물리적·정신적 빈곤. 그의 글쓰기는 일상화된 폭력 속에서 개인이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다. 그의 소설속 주인공들은 빈곤과 싸우는 사람들이다. 앞서 언급한 네티즌의 말처럼 ‘부르주아의 도시, 검은 무리의 늑대들이 어슬렁거리는 이런 도시를 나름의 깔끔한 방법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런데 최근 배수아에게 내부로부터, 외부로부터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그는 전업작가가 된 이후 지식을 쌓기 위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논리적이고 통찰력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것. 지난해 독일체류중 쓴 ‘이바나’는 자신의 모든 소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 작품과 함께 올해 발표한 ‘동물원킨트’는 종신심사위원제를 채택해 국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문학상으로 알려져 있는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 후보에 연이어 오르내리고 있다.
평론가 이광호씨는 90년대 문학을 정리하자면서 배수아의 ‘철수’ 이야기(월간 ‘현대문학’ 5월호)를 다시 꺼냈다. 그는 “개인의 내면응시라는 90년대 문학경향에서 새로운 점을 길어올려 2000년대에 평가하자면 그것은 90년대를 풍미한 신경숙보다 이질적 요소를 던진 배수아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배수아는 지금 갈림길에 놓여 있다. 그는 박상륭 이래 지독하게 낯선 것이 어떻게 기성체제와 관계를 맺는지를 보여주는 특이한 작가다.
▲작가가 말한‘나의 문학적 연대기’
1965년 3월 서울 필동에서 태어나다
1988년 이화여대 화학과 졸업. 더이상 어떤 학교도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다.
1988~89년 6개월 동안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조교생활
1991년 나중에 데뷔작이 된 ‘사촌’을 쓰다. 쓰게 된 계기는 컴퓨터 워드 연습 도중. 시작한 것은 매우 간단하지만 그것을 끝낼 수 있었을 때는 스스로 조금 놀랐다. 그러나 그 당시는 발표한다거나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1992년 공무원 일 시작하다. ‘사촌’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다. 그리고 강하게 비판받다. 비판의 요지는 ‘겉멋이 들었다’는 것이다.
1993년 서울역 철도문고에서 ‘소설과사상’ 잡지를 발견하다. 일반독자의 투고를 받는다는 기사를 읽고 ‘사촌’의 원고를 보내다. 문학계간지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다. 그해 겨울, ‘소설과사상’에 ‘사촌’이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이란 제목으로 실리다.
1995~2000년 네 권의 소설집과 네 권의 장편, 한 권의 중편, 한 권의 에세이를 출판하다. 자세한 목록은 거론하지 않겠다. 이런 리스트의 나열은 생각만 해도 지겹지 않은가. 나는 내 책의 제목들이 대부분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해야 할 때는 몹시 괴롭다. 나에게 제목이란 면상의 흉터와도 같아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치명적이다.
2000년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문장작성법’이란 책을 선물로 받다. 아직 읽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읽게 될지도 모른다.
2003년 4월 새로 나온 빨간 표지의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공항 서점에서 샀다. 한때 책을 읽었던 시기(고등학교 때)를 생각나게 해주었다.
2003년 5월 여전히 모든 일들이 과거와 다름없이, 그대로 진행중이다.
◇발표작 ▲일요일스키야키식당(2003) ▲동물원킨트(2002) ▲이바나(2002)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2001) ▲내 안에 남자가 숨어있다(산문집·2000) ▲그 사람의 첫 사랑(1999) ▲철수(1998) ▲심야통신(") ▲만일 당신이 사랑을 만나면(시집·1997) ▲부주의한 사랑(1996) ▲바람인형(") ▲랩소디인블루(1995) ▲푸른사과가 있는 국도(")
/한윤정기자 yjhan@kyunghyang.com/
전업작가로 변신한 소설가 배수아
‘주인공들은 전혀 사회에 관심도 없고, 혼자 잘 놀고, 어쩌면 아무 생각 없는, 도대체 왜 사는지 모르는, 사실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절대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오히려 저런 사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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